인공지능 낙관론과 그 반론

1. 인공지능이 발전해서 기존의 직업들이 사라진 만큼 새로운 직업들이 생길 것이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직업들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새롭게 생긴 일자리들은 임금과 복리후생의 측면에서 기존의 일자리들보다 열악하다는 사실은 여러 차례 관찰된 바 있다. 새로운 일자리들은 기존의 직업들보다 더 많은 인지능력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실직자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얻기 위해 재교육 받아야 할텐데, 이 단계에서 좌절하고 낙오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레이 커즈와일의 주장에 따르면, 기술 진보의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가속되는데, 따라서 일자리의 교체 주기도 빨라질 것이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반에 태어난 사람들은 타자기를 사용할 줄 알면 평생을 먹고 살 수 있었으나, 21세기 초반에 태어난 사람들은 10년, 5년, 1년 주기로 직업을 바꿔야 할 것이다. 당연히 삶의 안정성이 떨어지고, 매 교체 주기마다 낙오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또한 직업은 단순히 생계수단인 것이 아니라, 자아실현의 수단이기도 하다. 기술이 진보할 수록, 직업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GPT4가 작성한 대본을 수정하면서 성취감을 느끼는 방송작가가 몇명이나 있겠는가?


2. 인공지능이 인간을 위협할 수 있다고? 터미네이터, 매트릭스 같은 공상과학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 아니신지?

인공지능의 위협은 터미네이터, 매트릭스처럼 자의식을 가진 인간형 로봇들이 인간을 상대로 총들고 반란을 일으켜 인간들을 하나하나 사냥하는 방식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 보다는 기업들이 더 이상 인간 노동자들을 채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실업자들에 대한 복지예산을 감축하는 방식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이것은 미국에서 어느 정도 현재진행형인 사안이다. 미국의 대도시들은 심각한 노숙자 문제를 겪고 있는데, 이것은 미국의 실업률이 높아진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복지예산을 삭감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중국, 러시아 같은 강대국들의 위협에 대응하려면 복지예산을 삭감하고 그 예산을 기술 진보에 재투자 할 수 밖에 없다. 전세계가 미국과 유사한 길을 가게 될 것이다.


3. 설령 인공지능으로 인해 모든 일자리들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경제가 성장하려면 소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소비를 위해서라도 기본소득제 혹은 그에 상응하는 복지제도를 통해 인간을 돌봐줄 것이다.

기계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게 된다면, 인간은 생산력은 없고 소비만 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중증 장애인, 고령의 노인 같이 생산력은 없고 소비만을 하는 계층을 "부양 인구"라고 하는데, 당연히 국가의 입장에서는 이런 부양 인구는 작을 수록 좋은 것이다.

당연히 국가들, 기업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체제 경쟁에서, 부양 인구가 적은 편이 생존에 이로울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쓸모없는 인간들을 제거하는 체제에게 선택압이 가해질 것이다. 이것은 기계들이 총들고 인간을 사냥하는 터미네이터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저출산을 유발해 매 세대마다 서서히 인구를 감축하거나, 아니면 복지예산을 삭감해서 서서히 말려죽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이는 지금도 어느정도 진행 중인 것이다. 저출산은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고, 복지예산 삭감은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이 모든 것은 인류를 멸종시키려는 사악한 의도를 지닌 개인이나 조직에 의해서 벌어지는게 아니라, 인간 조직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경쟁과정을 통해 비의도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4.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한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기계를 관리, 감독해야하고, 누군가는 로봇이 갈 수 없는 길을 가야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고, 언제나 인간의 역할이 남아있을 것이다.

사실이다. 하지만 기계들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 역시 기계가 될 필요가 있다. 현재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가 개발하고 있는 BCI(Brain-Computer Interface)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당연히 취업을 하기 위해서 두뇌에 칩을 삽입하는 시술을 받아야 할 것이다. 뇌에 심어진 칩을 GPT와 연동하는 노동자가 그렇지 않은 노동자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일할 것이고, 당연히 기업들은 BCI 시술을 받은 노동자들을 우선 고용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국가와 기업의 입맛에 맞게 서서히 개조되며 인간성을 잃어갈 것이다. 예를 들어, 먹고 싶어하고, 자고 싶어하고, 놀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은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다. 기계들의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인간의 몸뚱이를 개조해 먹는 기능, 잠을 자는 기능을 전부 제거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도덕적 감수성이 강한 군인, 공상에 빠지길 좋아하는 공장 관리자는 국가와 기업이 보기에 문제적(problematic) 개체들이다. 당연히 국가와 기업에게는 도덕적 감수성이나 공상에 빠지길 좋아하는 성격이 불필요하므로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해 인간적 특징들을 점진적으로 숙청해야할 것이다. 인간성에 대한 수정이 점진적으로 누적되어, 미래의 인류는 현생 인류와 아무런 공통점도 없는 무언가로 변하게 될 것이다.


5. 설령 인공지능 위협론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기술 발전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다. 인공지능으로 인한 인류의 종말이 예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적어도 우리 세대에서 벌어질 일은 아니다.

우선 인공지능 개발의 최전선에 있는 연구자들 조차도 그 빠른 속도를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기술 발전 속도가 그토록 느리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재앙이다. 오늘날의 환경문제와 기후변화를 해결하고, 국가경제를 성장시키려면 기술적 특이점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6. 당신이 하는 말은 전부 비현실적이다. 공상과학 영화 그만 보시라.

우선 우리가 오늘날 당연히 누리고 있는 항생제, 진통제, 백신, 엑스레이, MRI, CT 같은 현대 의학 기술들, 그리고 질소비료 같은 식량 생산 기술들 역시 그것이 실현되기 전에는 공상, 혹은 종교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성능 역시 1950년대의 슈퍼컴퓨터보다 강력하다. 1950년대의 사람들에게 2020년에는 스마트폰이라는게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면 모두가 정신나간 소리라고 비웃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이런 기술들이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주었다며 기술 진보를 숭배하고 있지 않는가? 당연히 오늘날의 환경문제와 빈부격차 문제를 해결하고, 국가 경제를 성장시키고, 인류가 다음 단계로 "진보"하려면 미래의 공상과학적 기술들이 필요하다. 우리가 미래의 공상과학적 기술들을 얻을 수 없다면 디스토피아가 훨씬 빠르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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