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출생주의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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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최근에 지구 생태계를 보호하고자 한다면 반기술 보다는 반출생주의가 더 낫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제가 아는 바에 따르면,  본래 반출생주의는 생태주의와는 무관하게 존재하던 사상이었습니다. 다만 최근에 과도한 인구가 환경파괴의 원인이 되고 있으니, 더 이상 인류를 재생산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추가된 듯 합니다.

이 글에서 저는 반출생주의의 한계들을 지적해보겠습니다.


1. 반출생주의는 지구 생태계 파괴에 있어서 기술과 자본의 영향력을 외면한다.

과도한 인구가 환경파괴의 원인이라는 생각은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있습니다. 특히 <킹스맨> 같은 할리우드 영화들을 보면 급진적 환경주의자를 자처하는 악당이 나와 지구를 구하기 위해 인구를 감축할 필요성을 운운하는 장면이 나오고, 이러한 영화들이 인구 과잉이 환경문제의 원인이라는 생각을 널리 유행시킨 것 같습니다.

물론 과도한 인구 역시 환경파괴의 하나의 원인입니다. 하지만 인구 과잉 뿐만 아니라, 기술과 자본이라는 원인 역시 존재하며, 기술과 자본은 과잉 인구보다 환경파괴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이는 윌 슈테펜, 요한 록스트룀 같은 저명한 환경과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사안입니다.(Steffen et al, 2015)

즉, 생태계 보호의 측면에서, 반출생주의는 인구 과잉이라는 지엽적 문제에 집중하는 나머지, 그보다 더 중요한 기술과 자본이라는 원인을 외면하므로서 오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2. 반출생주의는 지나치게 관념론적이다.

반기술 사상의 핵심은, 역사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이념이 아니라, 지리, 자원, 기술 등 역사의 "객관적" 요소들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출생주의는 그 시작부터가 존재하는 것보다는 비존재하는 것이 낫다는 사상을 설파하는 관념론적 사상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반기술 사상과 대척점에 있습니다. 기술 체제는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자율적 현상입니다. 따라서 다수의 인간이 반출생주의적 사상을 지닌다고 하더라도, 기술 체제로 인한 환경파괴를 중단시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다산 사상을 갖고 있는 수렵채집사회와 반출생주의 사상을 갖고 있는 기술 사회를 비교한다면, 후자(기술 사회)가 전자(수렵채집사회)보다 압도적으로 더 많은 생태발자국을 남길 것이라는 사실은 명확합니다.

3. 반출생주의는 되려 기술 체제를 도울 수도 있다.

산업 혁명 이후 지금까지 기술 체제는 인간의 노동력을 필요로 해왔으며, 기술 체제가 인류를 돌봐주는 이유는 오직 인간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급속도로 발전하는 자동화 기술과 인공지능 기술은, 인간 노동력을 불필요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인간 노동력이 불필요해진다면, 생산은 하지 않고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하기만 하는 인간은 기술 진보와 경제성장을 방해하게 될 것입니다. 당연히 자기증식 체제들 사이의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인류는 도태될 것입니다.(카진스키, 2022, p 105) 이 점을 고려한다면, 반출생주의를 널리 설파해 자발적으로 인구를 감축하자는 발상은, 되려 기술 체제의 성장을 도와 환경파괴를 재촉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위 세가지 이유로 인해, 반출생주의는 지구 생태계 보전을 위한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참고문헌

Steffen et al, The trajectory of the Anthropocene: The Great Acceleration, 2015.

Steffen et al, Planetary boundaries: Guiding human development on a changing planet, 2015

카진스키, 한아람 역, 반기술 혁명-왜? 어떻게?, 비공,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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