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중심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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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등장한 이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전부 인간중심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입니다. 좌익, 우익, 보수주의, 진보주의, 자유주의, 전통주의, 사회주의, 파시즘, 반동주의, 보수혁명, 신정주의 등등 전부 인간 사회를 중심으로 사고합니다. 인간중심주의란, 인간을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사고방식입니다. 인간중심주의자들에게는, 인간만이 중요한 존재이고,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체들과 사물들은 철저하게 부차적인 의미만을 갖습니다. 비인간 생명체와 사물이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것이 인간에게 쓸모가 있기 때문에 가치를 갖는 것입니다. 인간중심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야생의 자연은 철저하게 인간의 도구로서의 가치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산업혁명 이후에 발생한 이념들 중에서 그나마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했던 이념은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 정도일텐데, 이러한 이념들이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했다고 해서 딱히 대안으로서 생태중심주의를 지지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명확합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생태중심주의 역시 또 하나의 대규모 서사(overarching narrative)이고, 그것 또한 비판과 해체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되려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는 기술 체제의 효율성을 방해하는 (전통 공동체, 신분제, 가부장제, 성별이분법, 인종주의 등)낡은 이념들을 해체하는 역할을 하므로서 기술 체제의 하수인으로 복무합니다.

오늘날의 주류 환경주의 역시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 한계가 명확합니다. 주류 환경주의자들이 제 아무리 급진적인 수사를 쓰는 듯 해도, 결국에는 인간중심주의 이념을 부정하지 않기에 언제나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저스트 스탑 오일(Just Stop Oil)이니 멸종 저항(Extinction Rebellion)이니 하는 주류 환경단체들이 전부 그렇지요.

일부 급진적 우익 사상들, 예를 들어 네오파시즘이나 보수혁명 같은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이념들은 현대성(Modernity)과 자본주의, 자유주의 따위의 서구의 보편 이념들을 비판하며, 자신들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 역시 가치판단의 기준이 민족에 있으므로, 생태계는 철저하게 민족 번영의 수단으로 전락할 뿐입니다. 마치 나치당이 그러했듯이, 이들이 피와 흙(blut und boden)을 운운하며 자연친화적인 수사를 동원할 수는 있겠지만, 이들에게 있어서 자연친화는 선전 도구에 불과할 뿐입니다. 역사 속의 나치 독일이 그러했듯이, 이들 역시 민족을 수호하는데 있어서 생태계를 파괴할 필요가 있다면 거리낌 없이 생태계를 파괴할 것입니다.  즉, 민족의 이익과 생태계의 이익이 충돌할 때, 민족주의자들은 전자를 우선시 한다는 것입니다. 민족주의자들은 "태곳적", "유기체적" 따위의 형용사를 사용해가며, 자유주의자들이 개인의 행복을 넘어선 더 큰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못한다며 비웃지만, 민족주의자들 역시 그들이 정의한 협소한 민족 공동체 너머에 그것보다 훨씬 오래되고 거대한 생태공동체가 있다는 생각을 꿈에도 하지 못하지요. 카진스키는 좌익들을 유사 혁명가들이라고 비판했는데, 오늘날의 급진적 우익들은 유사 반동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현대인들이 영적 공허함을 느끼는 원인은, 자본주의니 자유주의니 하는 이념들 때문이 아니라, 현대인들이 인간의 본래 터전이었던 야생의 자연(Wild Nature)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류세의 환경파괴와 영적 공허함은, 인간중심주의를 버리고 생태중심주의를 채택했을 때 그 원인과 해결책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우리가 우리의 비대한 에고를 버리고 국가니 기업이니 노동계급이니 민족이니 가족이니 하는 협소한 인간 공동체를 벗어나, 야생의 자연과 합일 했을 때 지고의 행복을 맛보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으며, 지금보다 더욱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반기술 운동이야 말로 참된 혁명 운동이자 참된 반동 운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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