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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인류 문명이 처하고 있는 주된 모순이 무엇이느냐는 질문에, 각각의 이념들마다 각자의 대답이 있을 것입니다. 맑스주의자들은 생산 수단의 소유권을 둘러싼 자본가들과 노동계급 사이의 갈등이 주된 모순이라고 대답할 것이고,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와 여성들의 대결이 주된 모순이라고 대답할 것이고, 민족주의자들은 대량이민과 다문화주의를 유발하는 글로벌 자본과 각국의 민족주의자들의 대결이 주된 모순이라고 대답할 것이고,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그러한 주된 모순을 설정하려는 시도 자체가 본질주의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러한 대답들이, 저마다 각자의 세계관 안에서는 나름대로의 논리적 정합성을 갖고 있습니다만, 모두 명확한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단언컨대, 오늘날 인류 문명이 처한 주된 모순은 기술과 반기술의 대결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기술 체제와 야생의 자연 사이의 모순이 주된 모순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지동설이 보편적 상식으로 자리잡히기 이전에는, 천동설이 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천년이 넘도록 인류는 천동설을 기반으로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했고, 천동설이라는 모델은 꽤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즉, 천동설로도 우주를 설명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지동설이 천동설을 몰아내고 학계의 정설로 자리매김했을까요? 천동설이 틀렸고 지동설이 옳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지동설을 도입했을 때, 천체의 움직임과 우주를 더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꽤 많은 미국인들이 지구평면설을 믿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 지구평면설로도 물리현상을 충분히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설명이 더 길고 난해해질 뿐입니다. 지구평면설로도 이 세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니, 지구평면설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돌맹이가 아래로 떨어지고, 기체가 위로 올라가는 이유는, 사물에는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본성이 있는데, 돌맹이는 땅에 속해있기 때문에 땅으로 떨어지고, 기체는 하늘에 속해있기 때문에 위로 올라간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은 천년을 넘도록 중세 유럽의 세계관을 지배했고, 이것으로 물리현상을 설명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근세의 과학혁명과 함께 아이작 뉴턴이 만류인력의 법칙을 발견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은 힘을 잃었습니다만, 근대 물리학의 등장 이전에 천년이 넘도록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설명해줄 수 있었다는 의미에서, 천동설이 됐든, 사물에는 자기가 속한 곳으로 돌아가려는 본성이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이 됐든, 일부 미국인들의 지구평면설이 됐든 문제될게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동설과 근대 물리학과 지구구형론이 주류 학설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그저 그것이 더 정확하고 단순한 설명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페미니즘, 맑스주의, 민족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오늘날의 환경문제를 다루기를 거부하거나, 명확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어디선가 인지부조화가 발생하게 되고, 인지부조화를 숨기기 위해 추가적인 설명을 하게되죠. 이러한 사상들이 "틀렸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천동설로 우주를 설명하려면 말이 길어지고 복잡해지는 것처럼, 이들 역시 오늘날의 환경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장광설을 내뱉습니다.
적어도 카진스키의 반기술 사상이 오늘날의 환경문제, 더 나아가 현대 사회를 더욱 깔끔하고, 단순하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는 지동설이 천동설보다 우월하고, 뉴턴의 고전역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보다 우월하고, 지구구형론이 지구평면설보다 우월한 것처럼, 카진스키의 반기술주의가 페미니즘, 맑스주의, 민족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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