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술주의자들은 왜 현대 기술을 사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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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진스키와 그를 따르는 반기술주의자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아마도 왜 인터넷, 컴퓨터, 현대 의학과 같은 현대 기술을 사용하느냐는 비판일 것이다.

“현대 기술이 그토록 싫으면, 너희들부터 의약품, 냉방/난방 시설, 수도 시설, 전기, 자동차, 인터넷, 컴퓨터 같은 문명의 이기를 포기하고 산속에 들어가서 살아라! 너희들의 반기술 사상을 몸소 실천해서 모범을 보여라 이 위선자들아!”

반기술주의자들은 이러한 비판에 저마다 나름대로의 대답을 갖고 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래와 같다.

1. 카진스키가 대표하는 반기술 운동은 도덕주의를 추구하는 운동이 아니다.


채식주의 운동이나 종교 운동, 주류 환경주의 같은 도덕주의를 기반으로 한 운동의 경우에는, 그러한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범을 보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카진스키가 대표하는 반기술 운동은 도덕주의를 기반으로 두고 있는 운동이 아니다. 반기술주의자들은 그들이 반기술주의자라고 해서 반기술주의자가 아닌 일반인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한 바가 없다. 애초에 반기술주의 자체가 도덕주의를 추구하는 운동이 아니므로, 현대 기술 체제의 붕괴를 추구하면서도 현대 기술을 사용하는 위선이 허용되는 것이다. 반기술주의자들이 도덕주의자였다면, 처음부터 테러리스트인 카진스키를 추종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2. 기술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므로 기술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현대 사회가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말을 증명하려고 굳이 저명한 학자를 인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별다른 말을 할 것도 없이, 여러분의 주위를 둘러보아라! 현대 사회에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살기에는 불가능에 가깝다. 아르바이트를 구하거나, 은행 계좌를 개설할 때도 고용주와 은행은 휴대전화번호와 이메일을 기입할 것을 요구한다. 오늘날의 학교와 직장에서는 학생들과 근로자들에게 컴퓨터를 사용할 것을 요구한다. 설령 현대 도시에서의 생활을 거부하고 오지로 떠나겠다고 결심한다 한들, “오지”라고 할만한 장소가 거의 남아있지가 않다. 한국의 경우, 가장 깊은 산속에서도 스마트폰이 펑펑 터지고, 30분만 걸어도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가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설령 “오지”라고 할만한 장소가 남아있다고 한들, 머지않아 현대 기술이 그 장소에 침투해오기 시작할 것이다. 21세기는 기술이 지배하는 시대이다.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기술을 사용할 수 밖에 없고, 바로 이러한 현실을 바꾸고자 반기술 운동을 하는 것이다.

3. 사회적 층위의 실천과 개인적 층위의 실천은 별개이다.

어떤 사람의 목표가 전세계 기술 체제의 완전한 붕괴라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어서 개인적 층위의 실천은  중요하지 않다. 물론 그 사람은 개인적 차원에서 야생에서의 생존 기술을 공부할 수도 있고, 실제로 산이나 숲속으로 들어가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아보고자 시도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적 층위의 실천은, 전세계 기술 체제의 완전한 붕괴라는 사회적 층위의 목표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술 체제 붕괴라는 사회적 층위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어서, 가장 덜 중요한 사실은 바로 당사자가 기술을 쓰느냐 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현대 기술을 증오하면서 왜 기술을 사용하느냐는 질문은 다소 공격적이고 악의적인 질문인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반기술주의자들이 현대 기술을 어떠한 태도로 다루어야 하는지가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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