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문명의 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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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진스키의 반기술 사상을 추구하기 시작한 이후로, 필자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들 중 하나는 현대 기술 문명의 재건 가능성에 관한 질문이었다. 질문의 내용은 이러하다. 설령 반기술 혁명이 성공해서 현대 기술 문명을 타도한다 한들, 시간이 흐르면 인간 사회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오늘날과 같은 수준의 기술 문명이 다시 재건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가능성이 있다.

1. 원시적인 기술로 채굴 가능한 석탄, 석유 같은 화석연료들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으므로, 지구에 오늘날과 같은 수준의 기술 문명을 재건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이것은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Fred Hoyle)의 의견이다. 그리고 반기술주의자로서, 필자 역시 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싶다. 하지만 양보해서, 현대 기술 문명이 어떻게든 다시 등장한다고 가정해보자.

2. 반기술 혁명 이후 오늘날과 같은 수준의 기술 문명이 재건된다 하더라도, 아주 오랜 시간, 아마도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은 걸릴 것이다.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이런 대답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수백 년이든 수천 년이든 언젠가 기술 문명이 재건된다면 대체 반기술 혁명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당연히 기술 문명이 다시 등장할 때까지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자연친화적 삶을 누릴 수 있다는데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대답해주면, 이 사람들은 다람쥐가 챗바퀴 굴리듯이 반기술 혁명과 문명의 재건이 반복되는거냐며 화를 낸다!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비난이다. 그런 논리라면 밥은 뭐하러 먹는가? 어차피 몇시간 지나면 다시 배고파지고 또 먹어야 할텐데! 잠은 무엇하러 자는가? 어차피 다음 날에 다시 졸릴텐데! 아플 때 병원은 왜 가는가?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수명이 다해서 죽을텐데!

이런 질문을 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문명의 재건에 집착하는 이유는, 애초에 그들이 반기술주의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자연친화적 삶이라는 가치에 공감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을 붙잡고 설득하려하거나, 논쟁을 하는 것은 시간낭비이다. 애초에 이들은 반기술주의의 기본 가치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와는 별개로, 현대인들은 전근대 사회에 대해 생각할 때 현대인의 가치관을 전근대인들에게 투영하는 습관이 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전의  전근대인들의 가치관은 현대인들과는 아주 달랐다. 무엇보다도, 전근대인들은 현대인들 만큼 진취적이지 않았으며, 현대인들처럼 “진보”에 열광하지도 않았다. 인류가 “진보”에 열광하기 시작한 것은, 인류사 전체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한, 250년 가량 전에 불과하다. 이 250년이라는 시간도 어디까지나 산업화의 선두주자였던 서유럽을 기준으로 둔 것이지, 동아시아의 경우 불과 20세기 초반까지 상당수의 중국인들과 조선인들은 “진보”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사고실험으로, 한번 서울대, 카이스트 공학 박사들 수백 명을 타임머신에 태워 조선시대로 보낸다고 가정해보자.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가서, 상공업을 촉진시켜 경제를 성장시키고, 과학기술이라는게 있으니 과학기술 연구에 예산을 투자하고, 군대와 탐험가들로 이루어진 원정대를 세계 각지에 보내서 해외 식민지를 개척한 후 안정적인 해외 시장을 확보하고 그렇게 얻은 예산을 과학기술과 군사력에 재투자하자고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설파한다고 상상해보자. 아마 조선의 왕과 신하들과 백성들은 그런 주장에 시큰둥한 태도를 보일 것이다. 실제로 명나라 시대 정화의 함대가 동아프리카 진출에 성공했으나,식민지 따위를 개척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중국으로 되돌아 온 바 있다.

일부 현대인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18세기 산업 혁명 이전의 과거로 떠나 옛날 사람들에게 증기기관을 소개해주면, 산업 혁명을 더 일찍 일어나게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논리대로라면, 산업혁명은 18세기 영국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했어야 마땅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증기기관의 원리와 제작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의 증기기관은 산업 혁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산업 혁명은 단순히 기술의 진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해당 사회의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제도적, 지리적 조건들이 맞아 떨어져야 일어난다. 산업 혁명이 일어나는데 필요한 조건들 중 몇가지만 추려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인간의 노동력을 크게 뛰어넘는 효율성과 경제성을 갖춘 기계장치의 발명
2) 근대적 상법과 회계 방식
3) 증기기관을 활용한 배와 기차 등 뛰어난 운송수단의 등장
4) 개인의 재산권 보호를 바탕으로 한 자본가 계급의 발전

이것만 봐도 산업 혁명이 증기기관 하나만 있다고 저절로 발생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반기술 혁명 이후에 등장할 사회의 모습을 예상하기는 힘들지만, 반기술 혁명 이후의 사회의 사람들은 마치 전근대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진보”에 무관심할 것이며, 다시 산업 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제도적, 지리적 조건을 만족시키기는 너무나도 어려울 것이리라는 점은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위에서 소개한 프레드 호일의 주장대로, 원시적 기술로 채굴 가능한 화석연료와 광물들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으므로, 두번 다시 지표면에 오늘날과 같은 수준의 기술 문명이 등장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

먼 미래에 기술 문명이 다시 등장하든 등장하지 않든 간에, 어느 쪽이든 지금의 기술 체제가 자행하는 파괴행위를 방관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댓글

  1. Hello! I am currently compiling a master document of all available translations of Kaczynski's works and I wanted your input on whether I am missing any Korean translations. I attempted to reach out to you at the email address listed in your profile, but I received an error message that said that that account does not exist. I would appreciate it if you reached out to me at scbroom@proton.me.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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