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시 맥베이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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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 맥베이에 대해서

저자: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Theodore John Kaczynski)

Lou Michel, Dan Herbeck, American Terrorist: Timothy McVeigh & the Oklahoma city bombing, Appendix B, p398-402에서 발췌

우선 내가 맥베이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맥베이에 관한 내 진술의 신뢰도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밝히고 시작하겠습니다. 우리는 보통 철조망으로 분리된 야외 운동장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철조망 때문에 저의 경우 운동장에서의 대부분의 시간을 작은 원을 따라 달리며 보냅니다. 그래서 운동 시간 중 오직 15~20분만 다른 수감자들 대화하는데 씁니다. 그리고 저는 처음에 맥베이와 사귀는걸 주저했습니다. 맥베이와의 어떤 형태의 우호적 관계든 언론에 의해 보도될 것이고(사실로 밝혀졌습니다.), 그 보도로 인해 저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많이 잃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이건 아마 틀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망설임은 얼마 안가 사라졌습니다. 누구든지 이런 감옥에 갇혀있다 보면, 다른 수감자들이 어떤 결점을 갖고 있던 간에 그들과 일종의 연대감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맥베이를 좋아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우리 구역의 수감자들 중에서 가장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알았고, 사람을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떻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윗층의 수감자들과도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가 여기서 제일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기에, 우리 구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제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알고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의 관찰력이 대단히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어느정도 맥베이에게 공감할 수 있습니다. 숲속에서 살다보면, 도시인들보다 감각이 훨씬 날카로워 집니다. 발자국 소리를 결코 놓치지 않게되며, 평소와 약간이라도 다른 소리가 나면 눈치채게 됩니다. 하지만 숲 밖으로 나가거나, 오두막에서 작업에 열중할 때는 제 감각들은 마음을 향하고, 날카로운 주의력이 사라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ADX에 오고나서, 제 감각과 정신은 대부분 마음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맥베이가 감옥에서도 주의력과 주변 환경에 대한 관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제가 보기에 맥베이는 정말 똑똑한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 사회의 문제들, 특히 개인의 자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그가 저에게 털어놓은 생각들은 합리적이고 분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가 저에게 털어놓지 않은 비합리적이거나 분별 없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멕베이가 미국 정부에 대해서, 웨이코(Waco)와 루비 능선(Ruby Ridge)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는 거의 아무것도 모릅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그가 60 Minutes와 했던 인터뷰 기록을 보내주었는데, 아직 읽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 주제에 대해 그가 합리적이거나 분별있는 의견을 갖고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맥베이는 극우주의자라고 알려져있고, 그런 이유로 어떤 사람들은 그가 인종주의자일 것이라고 단정지어버립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이곳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재소자들에게 대단히 우호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단 한번도 그가 약간이라도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것을 못봤습니다. 그가 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가 걸프 전쟁에 참전하기 전에, 그를 비롯한 병사들은 적들을 증오하도록 설계된 프로파간다에 노출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가 페르시아 만에 도착했을 때, 그가 죽여야 했던 “적”들이 그저 그와 똑같은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게 되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맥베이는 그의 생각을 말해주었습니다.(저는 이게 상당히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우파와 좌파의 반항적 요소들은 알려진 것에 비해 더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두 집단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잠깐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우파”를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논쟁했습니다. 저는 “우파”라는 단어가, 정치적으로, 본래 권위주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왜 Montana Freemen 같은 급진적 반권위주의 단체들이 권위주의적 “우파”들과 동맹을 맺었는지 질문했습니다. 맥베이는 미국의 극우가 크게 두 갈래, 즉 파시즘/인종주의 갈래, 그리고 개인주의 또는 자유 사랑 갈래로 나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왜 이 두 갈래가 함께 “우파”로 묶이는지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좌파와 우파를 구분하는 기준을 제안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좌파는 대체로 총기를 싫어하지만, 우파는 총기에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맥베이 스스로는 우파에 해당됩니다. 한번은 그가 저에게 몬태나에서 사냥할 때 어떤 종류의 소총을 사용했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22구경과 .30-06구경을 썼다고 대답했습니다. 다음에 만났을 때 맥베이는 .30-06구경의 장점 중 하나는 철갑탄과 호환이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철갑탄을 어디에 쓰게요?” 맥베이는 언젠가 우리가 탱크를 쏴야할 날이 올 수도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반박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대답은 분명합니다. 제가 탱크를 쏠 일이 생길 가능성은 대단히 낮습니다. 제 생각에는 맥베이도 저나 그가(재입대를 하지 않는 이상) 탱크를 쏠 일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저의 추정은, 맥베이는 실제로 그 무기를 쓸 일이 있을지와는 독립적으로, 강력한 무기 그 자체에 매력을 느끼는 우파들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전혀 필요하지 않은 무기를 얻기 위해 변명, 주로 대단히 비현실적인 변명을 발명합니다.

하지만 맥베이는 전형적인 우익 극단주의자들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저는 이미 그가 다른 사람들의 문화를 존중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리버럴처럼 느껴집니다. 그는 전혀 비열하거나 적대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엄청난 애국자인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는 타고난 모험가 입니다. 그리고 개척시대가 끝난 이후의 미국에는 모험가를 위한 공간이 없습니다.

맥베이는 저에게 오클라호마 폭탄테러에 대해 단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사건에 대해 언론이 보도한 것 외에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맥베이가 실제로 언론이 그가 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했는지에 대한 의견을 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클라호마 폭탄테러가 미국 정부가 웨이코에서 저지른 행동에 대한 시위였다고 간주하면, 저는 폭탄테러가 나쁜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나치게 잔혹했기 때문입니다.

무고한 사람들에게 훨씬 적은 피해를 주면서 더 효과적인 시위를 할 수도 있었습니다. 오클라호마 청사에서 죽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 생각에는, 사무보조 같은 일을 하는 하급 공무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불쾌한 정부정책이나 웨이코 사태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없었습니다. 시위의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하겠다면, 시위자가 반대하는 정책이나 행동에 개인적으로 책임이 있는 비교적 적은 수의 사람들을 겨냥했다면, 더 효과적이면서도 훨씬 인도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시위는 오클라호마 폭탄테러만큼이나 많은 주목을 불러오면서도 비교적 적은 무고한 희생을 가져왔을 것입니다. 또한, 그 시위는 오클라호마 폭탄테러보다 훨씬 많은 동정심을 불러 일으켰을 것입니다. 절제되고 주의깊은 폭력은 받아들였을 많은 반정부적인 사람들이, 오클라호마 청사의 수많은 무고한 피해를 보고 등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언론은 우리에게 오클라호마 폭탄테러를 두려워해야한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세상에 그것보다 훨씬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이상 저에게는 그것을 두려워할 시간이 없습니다. 또한, 우리의 정치인들과 군대는 오클라호마 청사에서 죽은 숫자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죽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동기는 훨씬 더 냉혹하고 계산적입니다. 대통령의 명령이 내려오면, 장군은 수천명의 사람들을 일체의 망설임 없이 (주로 많은 민간인을 포함한)수천명의 사람들을 죽일 것입니다. 그가 명령을 따르지 않기 위해서는 사임해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그는 자신의 커리어를 망칠 바에야 차라리 수천명을 죽이겠다는 결정을 내립니다. 정치인들과 언론은 “자유 수호”라는 프로파간다를 통해 이런 행동을 정당화 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지만)설령 미국이 자유로운 사회였다 하더라도, 최근 수십 년 간 미국의 군사행동 대부분은 미국 사회의 생존에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비교적 좁은 영역에서 경제적 또는 정치적 이익을 지키거나,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설계된 것이었습니다.

언론은 오클라호마 청사의 살인을 무시무시한 잔혹행위인 것 처럼 묘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걸프전쟁 당시 언론이 미국을 마치 축구 경기 응원 하듯이 응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전쟁 자체가 마치 거대한 게임인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저는 고통 속에서 죽어간 이라크군 병사들이나 비탄에 잠긴 그들 가족의 슬픈 이야기에 대해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소규모 전쟁들은 “체제”의 이익을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하지만 본토에서의 폭력은 체제를 위협합니다. 그래서 체제의 프로파간다는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태도를 우리에게 가르쳐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효과적으로 시위할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 몇백명을 죽인 힘없는 반체제 인사들보다, 냉혹하게 계산된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위해 수백, 수천명을 죽이는 엄청난 권력을 쥐고 있는 정치인들과 장성들이 훨씬 두렵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연방정부 요원들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제 개인적 경험에 따르면 연방정부 요원들은 정직하지도 않고 유능하지도 않으며, 그들의 규칙을 스스로 어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경험을 통해, 제가 처한 입장에 있을 때는 언론인들과의 어떤 형태의 연락도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제가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이유는, 맥베이라면 제가 당신을 도와주기를 원했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편지의 시작 부분에서 언급했듯이, 이런 곳에 함께 갇혀있다보면, 서로 아무리 심한 차이가 있다고 한들 연대감을 갖게됩니다.

진심을 담아,

테드 카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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