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는 실현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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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2022년 현재 인류는 시간이 흐를 수록 심화되어가고 있는 서식지 파괴, 과잉 사냥/어획, 지구온난화, 환경오염,침입종 같은 환경문제, 경제적 양극화, 기술적 실업문제를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심화되어감에 따라, 그에 따른 사회주의적 해결책 역시 자주 제시되고 있고, 그러한 의견들이 힘을 얻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현재 인류가 처한 환경문제, 경제적 양극화, 기술적 실업문제의 원인을 기술 체제가 아닌 자본주의에서 찾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문제의 원인을 자본주의가 아닌 현대 기술에서 찾는 테드 카진스키(유나바머)를 격렬하게 비난하며, 때로는 서슴치 않고 저열한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기술의 본질은 인간을 더욱 편리하게 해줌에 있다. 하지만 기술이 노동계층 사람들을 더욱 불행하게 만든다면, 이는 그 기술이 공공 다수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게 아니라 소수의 지배계급 대자본의 편익을 위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아군의 최신 기술은 든든하지만 적군의 최신 기술은 끔찍한 법인데, 이는 기술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기술이 누구의 편익을 위해 활용되는지의 여부의 문제인 것이다. 같은 관점에서, 자본계급의 이익을 위해 활용되는 기술이 무서운 것은, 그것이 노동계급의 실업을 부추겨 자본의 편익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활용되기 때문인 것이다. 만약 이 기술이 노동계급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쓰인다면, 기술발전으로 인해 노동시간이 감소하고 노동계층의 소득이 더욱 증가하게 된다면 아무도 기술의 발전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문제의 원인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의 활용권, 더 나아가 소유권에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카진스키와 그를 추종하는 반기술주의자들이 정치적 상상력이 빈곤하여, 사회주의 내지는 좌파 경제라는 대안을 떠올리지 못하고 반기술이라는 멍청한 결론에 도달했다고 비난한다.

이 글에서 필자는 카진스키를 추종하는 반기술주의자로서, 카진스키의 반기술주의를 향한 사회주의자들의 비판을 조목조목 반박할 것이다.

2. 기술 체제는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자율적 현상이다.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의 배경에는 기술 체제를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환경문제, 기술적 실업, 경제적 불평등 같은 문제들은 지금의 기술 체제가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고 있기 때문이며, 기술 체제의 통제권을 자본가들로부터 탈취해 노동계급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게 만든다면 환경문제, 기술적 실업, 경제적 불평등 같은 문제들 역시 해결 가능할 것이다. 즉, 기술 체제의 통제권을 누가 갖고 있느냐의 문제이지, 기술 체제 자체는 인간의 통제 하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칼 맑스 시대부터 지금까지 인류는 200년에 걸쳐 기술 체제의 통제권을 자본가들로부터 탈취해 인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케 하려는 시도, 즉 사회주의 실험을 했지만, 결국엔 실패로 돌아갔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구 소련처럼 붕괴하거나, 북한, 쿠바 처럼 빈국으로 전락하거나, 중국 공산당 처럼 형식적으로만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실제로는 자본주의를 도입했다.

기술 체제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는 근본적 원인은 국가, 기업, 범죄조직, 종교집단, 문화집단, 정치집단 같은 인간 조직들이 서로 경쟁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쟁이 기술 체제를 통제하려는 시도들을 무위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제치고 현대 사회의 주류 경제 체제가 된 이유는, 자본주의적 체제들이 사회주의적 체제들과의 생존 경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령 몇몇 국가들이 사회주의를 채택한다 한들, 체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본주의로 회귀하거나(중국, 러시아), 체제 경쟁에서 패배해 빈국으로 전락할 것이다(북한, 쿠바).

사회주의를 실현시키려면, 즉 기술 체제를 인간의 통제 하에 두기 위해서는 인간 집단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체제 경쟁을 중단시켜야할 것이다. 이는 일종의 세계정부, 즉 철인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3. 세계정부가 추구할 안정적인 가치 체계를 설계하고 장기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인류가 모종의 사회주의적 세계정부를 수립하는데 성공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렇게 등장한 사회주의적 세계정부가 따라야할 가치 체계를 어떻게 설계하고 유지할 것인가? 이러한 시도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헌법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들에게는 분명할 것이다. 가치 체계가 담겨있는 헌법을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엄밀하게 작성한다면, 현실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할 것이다. 따라서 헌법은 추상적인 언어로 작성될 수 밖에 없다. 헌법이 추상적인 언어로 작성되었으므로, 대법관들은 동일한 헌법 조항을 두고 서로 완전히 상반되는 결정에 도달할 수 있다. 이 사실은 미국 연방대법원과 항소법원들의 판결문에 실려있는 반대의견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 헌법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헌법재판소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다.

따라서 사회주의적 세계정부의 결정은 사회에 예상치 못한 영향을 줄 것이며, 사회 변화는 세계정부의 목표와 가치관에 예상치 못한 영향을 줄 것이므로 장기적인 사회 발전은 안정된 가치 체계를 따르지 않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만 떠돌게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적 세계정부는 즉, 이번 세대에서 사회주의적 가치관을 따른다 한들 다음 세대에서는 자본주의적 가치관으로 회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역사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사회주의적 가치관은 빠른 속도로 자본주의적 가치관으로 회귀하게 될 것이다. 아래에서 제시할 모든 문제점들을 다 제외하더라도, 안정적인 가치 체계를 설계하고 장기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사회주의가 실현불가능하다는 것은 명확해진다.

4. 세계정부가 어떤 가치 체계를 따라야 할지 누가 결정할 것인가?

사회주의적 세계정부는 어떤 가치 체계를 따라야 할 것인가? 중국의 가치관? 미국의 가치관? 탈레반의 가치관? 만약 세계정부가 중국의 가치관을 따른다면, 미국이 반대할 것이다. 만약 세계정부가 미국의 가치관을 따른다면, 중국이 반대할 것이다. 만약 세계정부가 탈레반의 가치관을 따른다면 나머지 세계가 반대할 것이다. 세계정부를 수립하려는 시도 자체가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갈등을 유발할 것이기에, 세계정부를 수립할 수 없다.

5. 철인정치 자체의 비현실성.

a) 누가 "철인왕"을 고를 것인가?
b) 어떻게 "철인왕"에게 절대권력을 줄 것인가?
c) 철인왕이 죽었을 때, 어떻게 전임 철인왕과 동일한 가치관을 갖고 있으며 유능하고 양심적인 후임 철인왕을 고를 것인가?
d) "당신"은 철인왕을 고를 수 없다.
e) 설령 철인왕이 등장한다 하더라도, "당신"이 기대하던 모습의 철인왕이 아닐 것이다.

6. 국제적 합의?

세계정부, 혹은 철인정치의 실현 불가능성에 대해 지적하면, 아마 사회주의자들은 그들이 세계정부 내지는 철인정치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들은 위로부터의 강압이 아닌, 민주적 과정을 통해 전세계가 사회주의적 경제 체제를 도입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도입하자는 국제적 합의에 도달한 후, 이러한 합의를 어기는 국가들을 무역, 금융, 경제의 측면에서 보복을 가하는 방식으로 따돌릴 수 있을 것이다. 국가를 비롯한 전세계의 인간 조직들은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회주의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제적 합의 역시 위에서 제시한 문제들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결국 국제적 합의라는 것 역시 가치 체계에 기반해 이루어지며, 그러한 국제적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과, 도달 이후 시행 과정에서 강력한 권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국제적 합의의 기반이 되는 가치 체계를 충분히 오랜 기간(100년 이상?)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가? 위에서 지적했듯이 불가능하다.

강대국들이 국제적 합의를 강제로 도출시키고 이를 따르지 않는 국가들을 따돌리겠다는 발상은 기원전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서부터 나왔던 발상이다. 역사의 경험은, 애초에 국제적 합의 자체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합의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이를 주도한 강대국들이 직접 이러한 합의를 파토내는 경우가 많음을 보여준다. 국제적 합의에서 이탈했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는 국가 입장에서는, 단순히 국제적 합의에 기반한 감시를 회피하거나, 국가들 사이의 관계를 이간질함으로써 얼마든지 보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예를들면, 북한의 핵무장을 막기 위해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같은 강대국들이 북한을 상대로 경제적, 무역적 제한 조치를 가했으나, 북한은 이러한 제한 조치들을 피해 해외와의 무역을 계속할 수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핵무장을 하는데 성공했다. 콩고의 지하자원 콜탄은 강제노동, 아동노동을 통해 채굴되고 있으며, 콩고 군벌들의 자금줄이 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콩고 군벌들의 자금 확보를 막기 위해 콩고산 콜탄을 무역망에서 퇴출시켰으나, 콩고의 군벌들은 콜탄의 원산지를 르완다로 속이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콜탄을 수출할 수 있었다.

국제적 합의가 강압없이 실현되려면 어느 누구도 거짓말 하지 않고, 배신하지 않고, 이간질 하지 않아야 하는데, 인간의 역사는 거짓말, 배신, 이간질로 가득하다.

7. 권력자들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인간의 역사를 봤을 때, “절대” 권력자들에게도 선택지가 많지 않다. 지도자들의 선택지는 지도자들 사이의 내부 갈등, 부하들의 저항, 전적으로 기술적인 요인들로 인해 극도로 제한된다. 아돌프 히틀러는 휘하 장성들이 자신을 암살하거나 쿠데타를 일으켜 내쫓을 궁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군사적 정벌을 감행하고자 했으며, 유능한 지휘관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히틀러는 휘하 장성들을 상대로 철저한 숙청을 감행하지 않았다. 오직 아돌프 히틀러에게 연이어 행운이 따라주었기에 히틀러는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에 스탈린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군부를 상대로 철저한 숙청을 감행했다. 이 숙청으로 인해 소비에트 연방의 유능한 지휘관들이 제거되었으며, 이는 독소전쟁 초기에 소련이 나치 독일을 상대로 패배한 원인이 되었다. 송나라 황제 신종은 왕안석을 등용해 개혁정책을 펼치려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에서 절대 권력을 갖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쿠바의 경제를 부흥시키지 못했으며, 인종차별을 철폐하지도 못했으며, 정부기관들의 관료주의적 경향을 막지 못했다. 미국의 역사학자 클린턴 로지터는, 미국 대통령들의 권력이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크게 제한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조차도 스페인의 경제를 부흥시키는데 실패했다. 오스트리아의 절대군주 요제프 2세의 근대화 정책들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이처럼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비추어보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치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막강한 권력을 지닌 독재자들이나 전제군주들의 권력조차도 대규모 사회 현상 앞에서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8. 설령 특정 사안에 대해 합의를 얻었다 하더라도, 공유지의 비극으로 인해 합의를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없다.(카진스키, 2022, 제1장)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은 생물학자인 가렛 하딘이 1968년 과학잡지인 사이언스에 실은 논문의 제목에서 유래한 용어다. 지하자원,초원,공기,호수에 있는 물고기와 같이 주인이 없는 모두의 공동 소유인 공유자원은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과다하게 사용돼 결국 고갈된다는 이야기이다.

공유자원은 공공재처럼 소비에서 배제성은 없지만 경합성은 갖고 있다. 즉 원하는 사람은 모두 거져 사용할 수 있지만 한 사람이 공유자원을 사용하면 다른 사람이 사용에 제한을 받는다. 예를 들어 한 마을에 공동 소유의 목초지가 있다고 하자.그러면 소를 키우는 사람들은 자기 소가 가능한 한 많은 풀을 먹게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목초지는 결국 황폐화한다. 공유지의 비극은 외부 효과 때문에 발생한다. 한 사람의 소떼가 공유지의 풀을 뜯어 먹으면 이는 다른 사람의 소떼가 먹을 풀의 질과 양을 떨어뜨린다.

9. 사회적 합의?

누군가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인간 사회를 합리적으로 통제하는게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는 근본적인 어려움을 갖고있다. "우리가 장기적으로 추구해야할 이상 사회는 무엇인가?" 인류는 단 한번도 이에 대한 합의를 얻은 적이 없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욕망을 갖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진보”로 여겨지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퇴보”로 여겨질 것이다. 한국에서 우리는 이 현상을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와 국민의 힘 지지자들 사이의 갈등, 좌익과 우익의 갈등을 통해 목격하고 있다.

10. 복잡계에 인위적으로 개입했을 때 발생하는 나비 효과.

복잡계(Complex System)란 “수많은 구성요소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구성요소 하나하나의 특성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현상과 질서가 나타나는 체계”라고 요약될 수 있다. 기존의 연구들은 복잡계 개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창발성(Emergence),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 자기조정(Self-adjustment),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 공진화(Co-evolution), 끌개(Attractor) 등 다양한 특징들을 제시하고 있다.

복잡계의 대표적인 특징은 바로 초기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초기변수에 약간의 오차만 있어도 그 결과값은 극적으로 바뀔 수 있다. 대표적인 복잡계는 바로 지구의 대기권이다. 대기에는 수많은 변수와 되먹임 고리가 있으므로, 기상학자들조차 날씨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현대 기술 문명 역시 복잡계에 해당하며, 따라서 인간 사회를 통제하고자 하는 인위적 개입에는 거의 언제나 나비효과가 발생할 것이다.(카진스키, 2022, 제1장)

11. 국가, 기업, 정치집단, 종교집단, 범죄조직 등의 자기증식 체제들의 존재.(카진스키, 2022, 제1장)

현대의 대규모 복잡 사회에서는 국가, 기업, 정치집단, 종교집단, 범죄조직 같은 자신의 생존과 증식을 추구하는 자기증식 체제들이 발생할 것이다. 이 현상은 복잡계 이론에서 말하는 창발(Emergence)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제 아무리 강력한 세계정부, 또는 국제적 합의가 존재한다 한들, 자기증식 체제들은 자연선택을 통해 감시와 억압을 회피할 수단을 갖추게 될 것이다. 자기증식 체제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체제 경쟁은 현대 사회의 발전을 합리적으로 통제하려는 시도들을 전부 무위로 돌릴 것이다.

12. 결론

위의 내용들은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유나바머)의 저서, "반기술 혁명-왜? 어떻게?"의 제 1장의 내용을 재정리한 것이다. 본래 제1장의 제목은 “사회 발전은 결코 인간의 합리적 통제 대상이 될 수 없다”이지만, 이 내용들은 사회주의를 비판하는데 고스란히 쓰일 수 있다. 사회 발전을 인간의 합리적 통제 하에 두고자 하는 것이 사회주의의 근본 사상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를 향한 위의 비판들은 카진스키가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 아니다. 예를들어, 이미 1920년에 루드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가 경제의 계산불가능성을 근거로 사회주의가 실현 불가능함을 지적한 바 있다.(Mises, 1920) 사회주의가 실현불가능하다는 점은 이론적으로도 증명되었고, 19세기에서 21세기까지 지난 200년간의 역사를 통해 경험적으로도 증명되었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들은 2022년 현재에도 사회주의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이 이 글을 읽는다고 해서 그들의 사상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의 믿음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의 의미는 사회주의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해결책이 실현불가능한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고, 더 나아가 사회주의자들의 헛소리에 놀아날 사람들의 숫자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하는 시도에 그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 이러한 비판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반응은, 비판 자체를 못본 채 하거나, 유나바머가 정신질환자라거나, 유나바머가 테러리스트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식으로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을 무마하려들 것이다. 어느 방향이든, 사회주의자들은 이 비판에 대해 결코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사회주의자들이 반기술주의자들을 비난하며 사용한 수사들을 사회주의자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줄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이 아직도 사회주의 환상을 붙들고 있는 이유는, 그들의 지능이 부족해서 역사로부터 교훈을 배울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사회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을 일은 없겠지만, 천번만번 양보해서 설령 사회주의자들이 몇몇 국가에서 어떻게든 정치 권력을 붙잡는다고 가정해도, 역사 속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늘 그러했듯이 자본주의로 회귀하거나(중국, 러시아), 빈곤국가로 추락(북한, 쿠바)하는 헛된 시도를 영원히 반복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헛된 시도가 반복되는 사이에 기술 체제는 지표면의 생태계를 모조리 집어삼킬 것이고, 인간은 모조리 기계로 변하거나, 기계로 대체될 것이다.

참고문헌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 한아람 역, 반기술 혁명-왜? 어떻게?, 도서출판 비공, 2022.
Ludwig von Mises, Economic Calculation in the Socialist Commonwealth,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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